- 이 강의는 단기4328년(서기1995년) 봄에 8주간 부산 전포동 「배달겨레 학당」에서 말씀하신 것을 녹취한 것입니다.-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는 모든 만물(존재)은 모두가 성불(成佛)될 수 있지만 오직 사람만이 스스로 성불(成佛)할 수 있고 나머지 모든 자연적인 존재나 인위적인 존재는 타력에 의해서 성불(成佛)되어지는 것이며 스스로 성불(成佛)하여지는 상태를 이름하여 깨달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수좌가 ‘조주’에게 물었을 때 ‘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하였지 ‘개에게 불성이 없습니까? 있습니까?’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러한 예는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요. 큰 뜻은 틀린 바 없지만 문맥상으로 앞뒤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있습니까’와 ‘없습니까’가 앞뒤가 바뀌어지면 문맥이 잘 맞지 않다는 거예요.
이제 다시 돌아가서......, 똑같은 의미인데 뭐냐면...... “‘한’의 시작은 없으며...” 끊는 자리를 여기까지 한 겁니다. “‘한’의 시작은 없으며, ‘한’은 시작이다.”는 해석은 틀린 말은 아니에요. 왜냐면 ‘한’의 시작은 없는 거란 말이에요. 분명히 없는 것은 맞죠. 시작은 없되 그렇지만 역시 ‘한’은 시작인 거예요.
아까 이야기했던 “‘한’의 시작은 무(無)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은 틀린 말이고, “‘한’의 시작은 없으며, ‘한’은 시작이다.”는 이 말은 맞는 말이긴 한데 문법상으로는 안 맞는 거예요. 즉 뭐냐 하면 우리가 문법상으로 표현할 때, 지금 제가 전포동 산- ♪ 그 당시 종사님께선 전포동 산동네에 달샛방 하나를 구해서 생활하고 계셨습니다.♪-에서 내려왔단 말이에요.
산에서 내려와서 여기까지 오는데 쭈욱 순서대로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집에서 세수를 하고, 신발을 신고, 문 열고 나와서 복사 집-♪ 매주 강의 때마다 강의 내용을 펜으로 쓰시고 그걸 복사하셔서 나누어주셨지요.♪ -에 들렀다가 여기 학당에 들어왔다고 하면 말의 문법이 그대로 맞는 거예요. 그런데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학당에 들어왔다. 학당에 들어오기 전에 들렸던 곳이 복사 집이었고, 또 복사 집에 들리기 전에 집에서 세수를 했다. 세수하고 나서 신발을 신고 나왔다.’ 이렇게 하면 사실 말은 맞잖아요? 말은 맞는데 문법상으로서 앞 뒤 조리가 안 맞고 두서가 없잖아요?
“‘한’의 시작은 없으며, ‘한’은 시작이다.”는 이 말은 맞지만 말의 순서를 따라 정확하게 얘기해야 합니다.
이제 앞으로 <천부경(天符經)> 강의 끝날 때 얘기하겠지만 <천부경> 맨 마지막 구절이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인데, 조금 아까 해석한 방법과 똑같이 하게 되면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은 “‘한’의 끝맺음은 없으나 ‘한’으로 끝난다.”로 이렇게 되어버리는 거예요.
이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문맥입니까?
비록 <천부경>이 81자 밖에 안 되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잠시도 놓칠 수 없는 거예요. 글자 한 자 잘못 해석하게 되면 문맥이 180〫〫〫〫̇′로 달라져 버리니까요. 모르지요. 내가 혹시 잘못해석하고 있는 건지..... 그러나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나를 믿으세요. 눈 꼭 감고, 두 귀 막고 나를 믿으시라니까요. 책임질테니....
모든 우주 만물은 ‘한’에서 시작되었어요. 지금 현재에서 시간을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거기엔 분명히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따르겠죠? 과거로 거슬러 계속 올라갈 거 아니에요? 미래는 아직 모르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서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
(칠판에 쓰여진 ‘한’을 가리키시며....)
여기까지 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 이상은 갈 수 없는 거예요. 여기까지 갈 수 있다는 건 모든 것은 여기서부터 시작이 되었다는 거예요. 어떻든 시작은 여기서부터 라는 거예요.
모든 것은 ‘한’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여기 이것이 나올 수 있는 그 어떤 시작은 무시(無始)라는 거예요. 즉 이것-(‘한’)-의 시작은 없다는 거예요. 거슬러 올라가니까 여기까지 왔죠? 모든 것은 진리의 근본인 ‘한’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그러나 이 ‘한’의 시작은 없는 것이다. 왜?
이 자리는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본래부터 있었죠. 나타난 현상을 쫓아서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여기에 도달하는 거예요. 모든 만물의 근본, 근본의 시작인 거예요. 근본의 시작인 것은 여기가 분명히 맞잖아요? 이 근본, 이 자리는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도 아니고 새로 시작하는 데도 아닙니다. 이것의 시작은 끝이 없다고 하는 거예요. 이것을 보통 우리는 뭐라고 하냐면 영원(永遠)하다고 합니다. 허공성(虛空性)과 시간성(時間性)도 함께 해 있는 거예요.
그러나 이 얘기에 대해서 지금 많이들 이 부분을 부정하는데....뭐냐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시공(時空)도 ‘한’으로부터 나왔다고 합니다만 사실 안 그래요. 이미 있는 것을 개념상으로 사람이 의미를 붙인 것이에요. 이미 드러나 있는 것을 ‘한’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미 여기에 시공도 함께 해 있어요. 함께 해 있는 부분 가운데 흐름과 공간을 나누어서 시(時)와 공(空)으로 표현한 거예요. 그래서 ‘시공’ 이것 역시 영원한 거예요. 근데 대부분 보면, 어떤 곳에서 공부를 가르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이런 것 역시 ‘한’으로부터 나왔다고 합니다.
왜냐고 하면 근본 또는 근본자리라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이름붙일 수 없고, 크고, 작고, 길고 짧은 그런 것이 없는 것인데 시공(時空)은 안 그렇다는 거예요. 공(空)이라고 하는 것은 넓고 좁음이 있고, 시(時)도 길고 짧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래요.
사실 시(時)라고 하는 것은 본래 길고 짧음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시(時)란 흐름이에요. 역시 공(空)도 마찬가지고......넓고 좁음이, 크고 작음이 없어요. 공간도 무한한 거고, 시작도 끝도 없고......그리고 역시 시(時), 흐름도 길고 짧음이 없어요. 길고 짧음이라는 것은 사람이 표현상 어떤 개체(個體)에 의미를 붙이는 거예요. 개체라고 하는 것이 없을 때, 만물 그러니까 현상(現象)이죠, 현상이 없을 때 어떻게 해서 흐름이 길고 짧음이 있어요?
그러니까 없는 것이죠. 단, 시간과 공간의 단위는 우리들 마음대로 현상의 질서 법칙에 따라 만들 수는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결국 뭐냐고 하면, 아까 이야기 했듯이 ‘나’라고 하는 것이 전부 관념(觀念)이듯이 우리들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현상의 세계도 역시 전부 관념입니다. ‘나’라고 하는 실체(實體)가 없다는 겁니다. 왜? '한’과 더불어 시(時)와 공(空)이 함께 해 있는 거란 말이에요. 함께 하기 때문에 만물이 생겨나기 이전에 이미 이 흐름은 그대로 계속 있어 왔습니다. 그러면 만물이 생겨난 것은 인연 따라 생기는 거란 말이에요. 인연 따라 생겼을 때, 생긴 그 만물은 시(時). 공(空). ‘한’. 이것이 함께 들어가 있는 겁니다. 이 세 가지의 어울림을 통해서 모든 만물이 복합적으로 인연 따라 불어나고 죽고 계속 변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