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 백공 종사님의 천 부 경 강 의(17)
- 이 강의는 단기4328년(서기1995년) 봄에 8주간
부산 전포동 학당에서 말씀하신 것을 녹취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뭐냐고 하면 원리론(原理論)입니다. 원리론! 수(數)와 글자가 갖고 있는 이치에 의미를 두어 가지고 원본을 이제 해석하겠습니다.
먼저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칠판에 이 다섯 자를 쓰시곤)
오늘은 이 구절을 풀어보겠습니다. 여든 한 자를 읽을 때는 그 문맥을 적당하게 꼭 필요한 부분에 끊어가지고서 읽어야 됩니다.
한글로 된 문장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어렸을 때 국민 학교에서 그런 얘기들이 있었지요. 한글을 그대로 연결시켜서 읽는데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하는 것을 ( 웃으시며 ) 문맥을 제대로 끊어서 읽지 못하면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그렇게 되어버린단 말이에요.
마찬가지로 이 이 여든 한자의 천부경(天符經)도 꼭 필요한 부분에 점을 찍어서 그 문맥이 끝나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전체적인 문맥이 그대로 이어지고 뜻이 확연하게 드러나는데.......<천부경(天符經)>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각자 그 점을 찍고 있어요. 그러니까 (칠판을 가리키시며) 저기에 나와 있는 다섯 자만 해도 마찬가지예요. 일(一) 다음에 점을 찍고 또 (분필을 들어 칠판의 글씨를 가리키며) 여기에 점을 찍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一, 始無始, 一), 또 시(始) 다음에 점을 찍고 또 무(無) 다음에 찍고 또 시(始) 다음에 찍는 사람이 있고(一始, 無, 始, 一), 시(始) 자에 점을 찍고 나머진 놔두는(一始, 無始一) 사람도 있어요.
그러니까 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글자 상으론 다섯 자인데, 그 의미가 엄청나게 달라져버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선 점을 잘 찍어서, 문맥을 제대로 파악해서 이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일단 저기에서 보면 ‘일(一)’이라고 하는 게 있는데,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할 때의 그 ‘일(一)’이라고 하는 게 뭐냐? ‘일(一)’이라고 하는 게......
숫자상으로는 일(一)입니다. 그런데 숫자상으로 표현된 그 일(一) 말고 다른 뜻이 없겠느냐?
일단 전체적으로 천부경(天符經)을 한번 읽어보면, ‘일시무시일 석삼극 무진본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일적십거 무궤화삼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대삼합육 생칠팔구 운삼사 성환오십 일묘연 만왕만래 용변부동본 본심본 태양앙명 인중천중일 일종무종일’. 이게 원문 전부입니다.
처음 나오는 일시무시일 그 일시무시일 할 때 그 일이라고 하는 게 뭔가? 일단 비유법으로 제가 그림을 한 번 그려 보겠어요.
천산(天山)이라고 아주 높은 산이 있습니다. 이 천산에서 벌써 수 천년 전이죠. 평생을 천산의 깊은 동굴 속에서 씨름을 하다가 어느 한 순간 문이 확 열려지는 것을 본인 스스로 느낀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씨름이라고 하는 것은 (웃으시며) 우리가 요즘 텔레비전에서 구경했던 그 씨름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씨름인거예요. 그럼 자기 자신의 어떠한 부분과 씨름이냐? 그동안 그 사람이 천산에서 수 십년 동안, 어쩌면 그 사람의 나이가 환갑이 거의 다 되었는지도 모를 거예요. 생각을 통해서 의문 나는 것들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한 가지 한 가지 의문이 다 풀리고 마지막 최종적으로 자기에게 남는 그 의문은 뭐였느냐고 하면........“도대체 나라는 게 뭐냐? 그리고 태초에 이 우주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단 말인가? 그러면 만들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있다고 하면 그 어떤 것은 도대체 무엇이냐?” 끊임없이 의문의 꼬리를 물고 깊게깊게 들어간 거예요.
그리고 “죽음이라고 하는 게 뭐고, 삶이라고 하는 게 뭐냐? 자기가 그동안 꾸준히 지켜와 봤지만 어떻든 자기 도반들, 또는 선배들....많은 사람들이 결국 언젠가는 죽어갔는데 죽어간 이후에 그 몸뚱아리들 속에 과연 뭐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그것이 어떻게 되겠는가?” 이러한 의문들이죠.
이러한 의문들하고 수 십년 간 씨름을 한 거예요. 물론 천산의 산중에서 먹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안 좋은 조건이었겠죠. 그렇게 자기 목숨을 걸고, ‘죽느냐 사느냐’를 필사적으로 도전하고 도전한 끝에 어느 한 순간 화~악 문이 열리더란 거예요.
그렇게 열린 그 문 안으로 들어가서 문 안에 있는 세계를 보니까, 그 문 안의 세계는 지금까지 자기가 보아 온, 인간의 세계.... 꽃도 피고, 열매도 맺히고, 여러 가지 물 흐르고, 바람불고 하는 그런 것들과 똑같은 것은 분명한데 분명히 다른 그 어떤 세계가 있는 거예요. 그 세계를 자기가 봤을 때, 도저히 말로서 표현할 수 없는 거예요. 너무너무 황홀하고 아름다워서.
그런데 가~만~히 멍청해가지고서, 그 문 안에 열려진 너무너무 아름답고 황홀한 세계를 보고 있노라니까 또 한 번 의문이 생기더란 거예요. “도대체 이 아름다운 모습들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단 말인가?” 그래서 또 한 번 의문을 갖고 생각을 하니까 한 가운데에 보일 듯 말 듯한 아름다운 꽃이 있더란 거예요. 그래서 그 꽃하고 자기가 볼 수 있는 그 아름답고 황홀한 세계를 연결시켜 보니까 그 황홀한 세계의 모든 현상들이 그 꽃에서 나온 향기와 빛으로서 다 만들어졌더란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 뭐냐고 하면 자기가 볼 수 있는 세계, 황홀한 세계도 너무너무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게끔 할 수 있는 그 빛, 그 꽃이 자기에게는 더 귀중해 보이는 거예요.
그렇다면 저 꽃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는가? 어떻게 해서 나왔는가? 여기에 또 한번 깊은 의문이 생긴 거예요. 그리고 나서 그 고민을 풀기 위해 또 한번 씨름을 한 거예요. 그 결과, 그 꽃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해서 나왔는가? 하는 그 의문을 다 풀어버린 거예요.
풀고 난 결과, 모든 황홀한 세계를 만들 수 있는 그 꽃의 향기와 빛은 누가 만든 게 아니라 태고(太古)적부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더란 거예요. “그렇다면 내가 이제 모든 것을 다 알고 , 모든 의문을 다 풀고 얻었는데 모든 인간들에게 주고 그리고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저 꽃이로구나!” 그리고 나서 이 천산에서 한 도인(道人)이 그 꽃을 한 아름 안고 산에서 내려온 거예요.
천산 밑으로 내려와서 자기와 지난 날에 같이 살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일단 그 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또 꽃을 보여주려고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한 것이죠. 많은 사람들을 일단 불러 모아놓고 얘기를 해야 되기 때문에 모두 불러 모은 거예요. 그리고 자기가 그 꽃을 들어 한번 흔들어본 것이죠. 그 사람들에게 한번 보여주려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얘기하고 있는 그 장소에 다 모여 있었는데 그 꽃을 한번 흔들어서 보여주었는데도 그 사람들의 그 눈동자들이 꽃을 향하여서 보질 않고 엉뚱한 곳을 보고 있더란 거예요.
그래서 이 도인이 “도대체 저 사람들은 한번 이 꽃을 보기만 하면은 그 꽃에 대한 의문이 다 풀어져 버릴텐데 왜 꽃을 보질 않고 어리벙벙하고 어리둥절하게 왜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는가” 하고서 직접 사람들 곁으로 다가가서 보니까 눈동자는 다 떠 있는데 동공(瞳孔)이 없는 거예요. 사람의 눈동자는 동공이 있어야 그 동공을 통해서 모든 사물들을 다 볼 수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눈을 제대로 뜨긴 떴어요. 눈동자를 가만히 지켜보니까 동공에 초점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꽃을 아무리 자기가 눈동자 바로 앞에 갖다 주어도 볼 수가 없는 거예요
“아!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해서 저 사람들에게 이 꽃을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이미 동공은 없는데.......”
단 뭐냐 그 사람들 귀는 열려있는 거예요. 자기가 꽃을 보여주기 위해서 소리 질러 사람들을 불러 모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왔었단 말이에요. 왔다고 하는 것은 들을 수 있는 귀는 가지고 있다는 것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