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는 배달 나라가 지금의 중국 전부는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배달 나라 강역을 통 털어 전부 검토해본 결과 산동반도 지역이 지하자원 가운데 철(鐵)이 가장 많이 나는 지역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일단 침범해오는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 철이 많이 나는 지역으로 수도를 옮긴 거예요.
그런 연유로 지금의 중국 산동성(山東省) 태산(泰山) 쪽으로 옮깁니다. 이 쪽으로 옮기고 나서 본격적으로 철기 문화가 세계 최초로 시작하게 되는 것이죠.
각종 철제 무기를 만들었고 철로 만든 갑옷과 얼굴에 쓰는 철가면을 만들었어요.
이 때 보통 화산족들은 얼굴에 쓴 그것을 보고 도깨비라고 생각했어요.
얼굴에 씌운 도깨비.
치우 천황은 철로 만든 것을 얼굴에 쓰고 철갑옷을 입고 적토마를 타고서 대륙을 달리며 전쟁을 했었고 적들을 완전히 소멸시켰죠.
그러니까 그 당시 그 기록들을 보면 이 화산족들은 어떻게 표현했냐고 하면 ‘전쟁하는데 귀신이다’ 라고 했어요.
그래서 치우 천황이 나중에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이 배달나라의 후손들 또 그리고 화산족들까지도 치우천황을 전쟁의 신으로 모시고 매년 제를 지내게 됩니다.
서안에서 산동반도로 옮기고 나서 500년 간 청구국이 있다가 결국 쇠퇴했죠.
그 다음에 단군 왕검! 조선이죠.
단군 조선이 만주로 이동한 거예요.
이 때에 지금 우리의 평양과 산동반도의 끝부분 사이에는 작은 섬들이 참 많았었어요.
그래서 산동반도에서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 이 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도를 가리키시며)이 쪽의 요동반도를 지나서 가는 것 보다는 훨씬 가까운 길이었던 거죠.
배를 타고 가다가 섬에 정착하고 섬을 지나서 또 섬에 정착하고......결국 이 산동반도와 지금의 우리 한반도의 왕래를 상당히 자주 할 수 있도록 땅이 좁아졌던 것이죠.
이곳을 발해만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민족의 수난사를 쭉 한번 검토해봤을 때 우리 민족의 뿌리는 천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거예요.
시작이 되고 나서 태백산! 그 다음에 태산으로 해서 백두산으로 이동한 거예요.
이렇게 해야만 우리 민족의 9000년 역사가 정리가 되는 것이에요.
천산에서 시베리아를 거쳐서 바로 만주로 간 게 아니란 말이에요.
왜? 이미! 이미.... 지금 산동반도에 가보면 고분(古墳)!
지금 중원 대륙, 만주 지역에 가면 우리나라의 조상이 숨져가지고서 그러니까 세력깨나 썼던 사람의 무덤이죠. 그 고분들이 얼마나 있느냐고 하면 수 만개! 수 만개가 있습니다.
그럼 현재 이 산동반도에만 있는 것은 한 300개가 있습니다. 그리고 치우천황의 고분도 또 여기에 있습니다.
근데 이 300개의 고분들을 한번 조사해보니까 부여에 있는 백제 무녕 왕릉의 구조와 너무너무 똑같더란 거예요. 그렇게 될 때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 시대의 백제 문화는 전부 여기 산동반도에 다 있었어요. 그대로.
우리 한반도 이 부분이 아니라 여기까지 다 있었다는 거예요.
앞으로 백제 유물들이 이 산동반도에서 많이 발견이 될 거예요.
그래서 직접 이런 것들을 찾아 가보려고 합니다. 책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한번 가보고 싶어가지고.....왜? 흔적을 한번 찾아야 될 거 아니에요?
직접 내 몸이 가서 한번 부딪쳐보고 한번 숨을 쉬어보고 그러기 위해서 도전장을 냈어요.
6월 22일 날. 그러니까 한 20일 가량 남았죠.
여기 한웅 천황께서 도읍을 하셨던 서안, 태백산으로 갑니다.
태백산 정상에서 3일 간 기도하고....
다시 태산으로 가서 3일 간 기도하고 그리고 다시 백두산으로 가서 3일 간 기도하고 그러면 기도하는 날짜는 각기 태백산에서 3일, 태산에서 3일, 백두산에서 3일이고 왕래하며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있을 것 아니에요?
그래서 약 21일 간 계획을 잡고 있죠.
이 때쯤 가면 여긴 워낙 높으니까, 태백산은 거의 4000m 가까이 되니까 올라가면 아마 굉장히 추울 거예요.
일설에 의하면 이 태백산에도 백두산과 같은 천지(天池)가 있다고 하는데 사진으로는 아직 한번도 못 봤단 말이에요.
근데 태산은 지금 사진으로는 많이 나오고 있어요. 중국이나 대만이나 우리나라에도 태산의 전경을 담은 사진을 볼 수 있어요.
그 런데 아직까지 태백산의 전경을 찍은 사진을 본 적도 없고, 또 누구에게 이야기를 들은 바도 없습니다. 그래서 직접 한번 기도하면서.... 또 혹시 압니까? 그 당시 배달 나라 때 태백산 중턱 어느 바위에 새겨진 전자(篆字)라도 있으면 발굴해가지고서 탁본(拓本)도 해볼 수 있을지.....
이미 이제, 혹시도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런 준비도 다 해가지고 가는 거지요.
탁본할 수 만 탁본할 수 있게끔 모든 준비를 다 해가지고 가는 것이죠.
분명히 한 20일 간 한번 찾아보면 이미 6000년 전 옛날 우리 민족의 어떤 흔적이랄까 그런 것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시간이 좀 더 나면 치우천황 묘까지 갔다가 오려고 하는데 지금 치우 천황 묘는 사진으로서는 다 나오고 있어요.
얼마나 큰지 능(陵)이 산 만하다고 그래요.
아직까지 발굴은 했는지 안했는지 모르지만 치우천황의 묘가 지금 이 산동반도에 있다고 하는 거예요.
시간이 나면 거기까지 다녀 올 거고 시간이 나지 않으면 태산만 갔다 올 겁니다.
갔다 와가지고서 아마 좀 더 실감 있게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전해드릴 겁니다.
지금까지 <천부경>이 분명히 우리 민족의 조상이신 한인 천제에 의해서 말씀하셨고, 그리고 그 경(經) 가운데 <천부경>과 <삼일신고>와 <팔리훈>은 배달나라 시대에 이미 문자로서 체계화시켰고, 그 체계화시킨 문자를 신라시대에 최 치원이 그걸 보고 다시 한문 81자로 옮기고 묘향산 석벽에 새겼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앞으로 좀 더 많은 중요한 사서(史書)와 문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드러날 겁니다.
그리고 이 <천부경>이 어떠한 얘기 잘 하는 사람, 글 잘 쓰는 사람에 의해서 그냥 그저 쓰여 진 것이 아니라 확실히 진리를 깨달은 사람에 의해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것을 얘기했습니다.
아직까지 내용은 안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왜 내용을 들어가기 전에 이런 역사적인 면, 그리고 기록, 문헌을 소개하며 장시간 말씀드리느냐고 하면 사람들이 믿음을 갖지 않으니까........ 조금이라도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왜? 뭘 배울 때 믿음을 갖지 않으면 그것에 대한 공부에 발전이 없습니다.
일단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발전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좀 더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알고 있는 문헌, 기록들을 제가 볼 수 있는 것 가운데서 전부 들추어내어서 말씀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