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제가 한 이 얘기를 귀담아 잘 들었으면 금방 이해가 갈 겁니다. 이렇게 알아듣기 쉽게 구구절절이 설명해도 잘 이해가 안 가면 미안하지만 보따리 싸들고 열심히 새벽부터 기도를 좀 해 보세요.
이제 ‘무진본(無盡本)’으로 들어갑시다. ‘무진본(無盡本)’이라고 했지요?
‘무진본(無盡本)’! 없을 무(無)! 다할 진(盡)! 근본 본(本)!입니다. 이 ‘무진본(無盡本)’을 해석할 때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지난번에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을 이야기할 때 말씀드렸다시피 “‘한’ 즉 하느님은 아무 것도 없는 데에서 나왔다.”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듯이 여기서도 이 ‘무(無)’를 잘 읽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진본(無盡本)’을 “그 근본이 다한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라고 풀어요.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결국 ‘한’으로부터 삼신(三神)이 나와서 그 삼신을 통하여 삼극(三極)의 현상이 만들어졌는데 그 근본인 ‘한’은 무궁무진(無窮無盡)하다는 겁니다.
‘천지인(天地人)’하면 우주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포함한 것이란 말이에요. 그냥 우리가 ‘천지인(天地人)’이라고 말하지만 그 ‘천지인(天地人)’이 담고 있는 의미와 뜻은 어마어마한 것이죠.
이 어마어마한 것을 근본 자리인 ‘한’을 통해서 다 나투었지만 ‘한’은 그대로라고 하는 거예요. 조금도 변하지 않고 다함이 없다고 하는 거예요. ‘한’이 ‘천지인(天地人)’ 모든 것을 다 만들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또 다른 것을 만들 수 있는 그 여력과 힘은 무궁무진하다고 하는 거예요.
언제까지? 그건 끝도 없이 무궁무진하다는 겁니다. “다함이 없다.”(무진(無盡))고 했습니다.
(강의 시작하기 전에 나누어 준 복사물을 읽으시며.......)
<석삼극(析三極) 무진본(無盡本).>
“ ‘한’으로부터 삼신(三神)의 기운으로 ‘천지인(天地人)’이 만들어 졌지만 하늘 가운데 가장 지극함은 빛이며, 땅 가운데 가장 지극함은 지구이며, 생명 가운데 가장 지극함은 사람이다. 그러나 근본 자리인 ‘한’은 부족함도 다함도 없이 영원히 영원히 그대로인 것이니라.”
삼극(三極)의 원리를 그대로 표현해놓았습니다. 여기서 삼신(三神)은 우리말로 표현할 때 ‘한알’, ‘한얼’, ‘한울’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거예요.
철학적인 의미를 붙인다면 한알님은 조화(造化)의 신(神)이고, 한얼님은 교화(敎化)의 신(神)이고, 한울님은 치화의 신(神)인 거예요.
삼극(三極)은 ‘천지인(天地人)’인데, ‘무진본(無盡本)’ 다음에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天一一 地一二 人一三)’이라고 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에서 ‘일(一)’ 자(字)가 전부 네 자가 나옵니다.
<천부경(天符經)> 81자(字) 가운데 숫자로 된 것은 전부 31자(字)입니다. 1, 2, 3, 4, 5, 6, 7, 8, 9, 10까지 다 나오죠. 그 다음에 문자로 된 것은 50자(字)입니다. 숫자로 된 것은 31자이고 문자로 된 것은 50자인데 이 31자로 된 숫자 가운데서 일(一) 자가 전부 열 한번 나와요.
그럼 여기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에서 일(一)이 네 번 나오는데 의미가 다 똑같으냐? 아닌 거예요. 의미가 똑같은 것은 세 곳입니다.
(일어나셔서 글자를 가리키시며......)
바로 여기, 여기, 여기입니다.
천(天) 바로 뒤에 오는 일(一), 지(地) 바로 뒤에 오는 일(一), 인(人) 바로 뒤에 오는 일(一)은 같은 뜻입니다. 그런데 ‘천일일(天一一)’에서 뒤의 일(一)은 나머지 세 개와 다른 뜻입니다.
다시 말해 이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쉽게 정리가 될 것입니다. <천부경(天符經)> 속에 일(一) 자가 모두 열 한번 나오지만 지금 얘기하고 있는
‘천일일(天一一)’의 두 번째 일(一) 자(字) 하나만 순서를 뜻하는 것이고 나머지 열(十) 번의 일(一) 자(字) 모두는 ‘한(만법의 근원)’을 뜻하는 것입니다.
근데 뭔지 모르게 이상야릇하고 신묘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한’을 상징하는 것이 딱 열(10) 번 나오고 그 나머지 숫자 스물한 번(21)도 3.7일 (세이레)이라고 7일씩 3번 내리 하는 21일기도라든가, 애기 낳고 21일 간 외인출입을 금지시키는 '금줄‘을 쳐놓는 우리 옛 문화의 풍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수(數)입니다.
또한 ‘천지인(天地人)’이 각각 3번씩 나오며 모든 숫자가 서른한 번(31) 나오는 것은 삼일(三一)철학의 상징이며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의 나누임도 81장(章)으로 된 것은 <천부경(天符經)>과 연관성을 짓지 않았나 하는 느낌도 듭니다만, 너무 억지로 끼워다 맞추려고 하는 것은 좀 곤란하지 않겠어요?
그렇다고 해서 전혀 무시를 해버리는 것도 문제가 문제인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숫자가 지닌 연관성보다는 각기 숫자가 지닌 원리를 터득하여 살펴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입니다. 굳이 보충 설명을 하자면 우리가 현재 읽고 있는 모든 경전들, <성경(聖經)>의 신약전서, <불경(佛經)>, <코란>,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이런 책들이 당사자들 즉 예수님이나 부처님, 마호메트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직접 쓰신 책들이 아니잖아요?
모두가 가까웁게 생활했던 제자들에 의해서 입으로 입으로 전해지고 훗날 문자(文字)가 만들어지고 난 다음 비로소 원시적으로나마 기록이 되어 오늘까지 이어져 온 것 아닙니까?
할아버지께서 진리를 깨닫고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석삼극(析三極)......’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할아버지께서는 우주창조의 원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얼마나 많이 말씀하셨겠습니까? 그러던 것이 누군가(최치원이라 함)에 의해서 구궁도수(九宮度數) 81이라는 숫자에 맞추어 축소시켜 적어놓은 글을 오늘날 우리들이 보고 있는 거예요.
다시 말해 81자는 할아버지 말씀 가운데 뼉다구 밖에 없는 거예요. 천만다행히 뼉다구라도 남아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그러니 하나같이 모두가 제 멋대로 살을 갖다 붙여 해석을 하니 천차만별 중구난방이 되어 버리는 거 아니겠어요?
다른 방법 없어요. 할아버지를 직접 만나는 길 말고는 없어요. 만나면 그 즉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살을 뜯어다 붙이면 되는 겁니다.
<천부경(天符經)> 해석하는 사람들이 보통 이 부분을 어떻게 풀어놓느냐고 하면 “천일(天一)이 하나고, 지일(地一)이 둘이고, 인일(人一)이 삼이니라.”라고 해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어요.
그러면 천일(天一)은 뭐고, 지일(地一)은 뭐고, 인일(人一)은 뭐냐?
왜 천일(天一)은 일(一)이며, 지일(地一)은 이(二)이며, 인일(人一)은 삼(三)이냐?
이건 그냥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거란 말이에요. "천일(天一)이 하나고, 지일(地一)이 둘이고, 인일(人一)이 셋’이라는 해석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예요.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