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선님 페이스북에서 담아온 글 입니다.
일본에 있는 고마신사입니다.
아마도 마고당으로 추정 됩니다.
마고, 노고, 고당, 고마, 고모...마고를 일컫는 단어들이라 고마신사라는 단어가 참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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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 이상 한반도 정체성을 지키는 고마신사(高麗神社)에 다녀왔습니다.!!
한뿌리사랑세계모임-한사모와 인연을 갖고부터 생긴 습관이 일본열도(日本列島)에서의 한국원류
(韓国源流)찾기!!
별 전문적이지 않지만 나름되로 찾아서 정리 해 봅니다.
고구려나 발해 유민들이 일본열도에서 1300여년 이상 무능도원이나 귀국염원을 꿈 꾸었을 일본사이타마현히타카시 고마가와(日本埼玉県日高市高麗川)에 있는(高麗神社)에 다녀왔습니다.
『일본본기에 레이키2년=716년5월(霊亀)에 스루가(駿河=시즈오카현),가이(甲斐=야마나시현),
사가미하라(相模=가나가와현),시모쓰케(下野=
도치키현),가즈사(上総=찌바현),시모후사(下総=찌바ㆍ이바라키현),히타치(常陸=이바라키현)
등의 7개 지방에 살던 고구려인 1,799명을 무사시노 (武蔵野) 지방으로 이주시켜 고마군을 설치하였다』
제신(祭神)은 수장이었을 고구려 왕손고마노쟈코우
(高麗 若光)는 서기666년에 고구려에서 일본으로 이주 야마토정권의 관료로 무사시노에 발령됩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카바네(姓(可婆根)가 나옵니다.
姓(카바네、可婆根)는 고대일본 야마토왕권(大和王権)에 있어서 오오키미(大王,天皇)로부터 유력한
씨족(氏族)에 수여 되었다.왕권과의 관계 ・지위를 나타내는 칭호이다.이하 특별한 보충이 없는한 「氏」는「우지」, 「姓」는「카바네」로 읽는다.
姓(カバネ、可婆根)は、古代日本の大和王権において、大王(おおきみ、天皇)から有力な氏族に与えられた、王権との関係・地位を示す称号である。以下、特別の補足がない限り「氏」は「うじ」、「姓」は「かばね」と読む。
일본 중세시대의 인물 중에는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도쿠가와이에야스
(徳川家康)까지 카바네의 존재가 많이 부각됩니다.
源氏(켄지、미나모토우지)는「源」을 우지 명으로 하는 씨족,姓(카바네)는 조신(朝臣)。
源氏(げんじ、みなもとうじ)は、「源」を氏の名とする氏族。姓(カバネ)は朝臣。
중세 카마쿠라시대나 무로마치시대에 자주 등장하는 征夷大将軍(세이이타이쇼군)직책!!
또다른 북방도래인「세이=征夷」는 에미시 또는 에조(蝦夷)를 정벌하는 의미입니다.북방에는 여전히 에미시세력이 존재했다는 거지요..
일본에서 간토우(関東) 간사이(関西)는 여기에 유래하는 게 아닐까요?!
한반도 삼국시대의 도래?!과욕일까요?!
조선에서 임진왜란 패전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사 후 1600년10월 현 기후현 후와군세키가하 라에서 도쿠가와이에야스를 필두로 한 동군과 도요토미히데요리(豊臣秀頼)측의 모리데루모토
(毛利 輝元)서군 합쳐 양군 33만명이 집결하지만 하루만에 동군의 승리로 끝이납니다.
명실상부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에도시대(江戸時代)가 막을 열리고 264년 지속되던 평화시대도 얄궂게도 이 세키가하라 합전 패전후 살아 남아 오지로 쫓겨났던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長州藩)와 시마즈요시히로(島津 義弘=薩摩藩)후손들이 주축이 된 신센구미(新鮮組)메이지유신
(明治維新)에 의해서 1867년 막을 내립니다.
그후 우리에게는 일제36년의 아픔과 태평양전쟁 그리고 한국전쟁 후에도 일본에서는 여전히 이 역사적 흐름선상에 일본 보수정권의 아베총리의 자유민주당(自由民主党)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 고마신사(高麗神社)벽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668년까지 중국북동부에서 한반도에 있어 번영했던 대국 고구려.많은 고구려사람들이 일본에 도래하여 우수한 기술이나 문화를 일본에 전수 해 주었습니다!!
한일 친선,선린우호의 원점을 생각 해 봅니다.
물론 더 고대사의 원류를 찾아나가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참고사이트-
고마신사
https://ja.m.wikipedia.org/wiki/%E9%AB%98%E9%BA%97%E8%8B%A5%E5%85%89
가바네
https://ja.wikipedia.org/wiki/%E3%82%AB%E3%83%90%E3%83%8D
겐지
https://ja.wikipedia.org/wiki/%E6%BA%90%E6%B0%8F
도쿠카와 이에야스
https://ja.wikipedia.org/wiki/%E5%BE%B3%E5%B7%9D%E5%AE%B6%E5%BA%B7
세이이다이쇼군
https://ja.wikipedia.org/wiki/%E5%BE%81%E5%A4%B7%E5%A4%A7%E5%B0%86%E8%BB%8D
무로마치시대
https://ja.wikipedia.org/wiki/%E5%AE%A4%E7%94%BA%E5%B9%95%E5%BA%9C
야마토정권
https://ja.wikipedia.org/wiki/%E3%83%A4%E3%83%9E%E3%83%88%E7%8E%8B%E6%A8%A9
-카바네 보충-
姓(カバネ、可婆根)は、古代日本の大和王権において、大王(おおきみ、天皇)から有力な氏族に与えられた、王権との関係・地位を示す称号である。以下、特別の補足がない限り「氏」は「うじ」、「姓」は「かばね」と読む。カバネの発祥の経緯は明確ではない。大和王権が成熟し、大王家(皇室)を中心として有力氏族の職掌や立場が次第に確定していく中で、各有力者の職掌や地位を明示するために付与されたと考えられている。カバネには有力豪族により世襲される称号として、いわゆる爵位としての性格と、職掌の伴う官職としての性格の二つの側面があるとされ、古代、大和王権の統治形態を形成する上で重要な役割を果たしてきた[1]。
カバネの語源は必ずしも明確ではないが、以下のような説が存在している。
株根(かぶね)、株名(かぶな)などで血筋や家系を意味する語より。
崇名(あがめな)より変化したもの。
原始的カバネ[編集]
原始的カバネとは、大和王権による統一以前から、在地の首長や団体名に使われたと思われる名称である[2]。代表的な原始的カバネとしては、ヒコ(彦、比古、日子)、ヒメ(比売、日女、媛)、ネ(根、禰)、ミ(見、美、彌、耳)、タマ(玉、多模)、ヌシ(主)、モリ(母理、守)、コリ(古利、凝)、トベ(戸部、戸畔)、キ(岐、支)などがある。これらの原始的カバネは名称の語尾に付くもので、今日でも「ヒコ」や「ミ」など、人名の語尾によく使われるものもある。
カバネの制度化[編集]
大和王権が確立するとカバネが制度化され、王権との関係・地位を示す称号となる。最初にカバネを制度化したのは成務天皇と伝えられ、国造(くにのみやつこ)、県主(あがたのぬし)、ワケ(和気、別)、稲置(いなぎ)などが定められた[3]。允恭天皇の時代には臣連制が導入され、公・君(きみ)、臣(おみ)、連(むらじ)、直(あたい)、首(おびと)、史(ふひと)、村主(すぐり)などが定められた[4]。この改革により以前のワケ(和気、別)はキミ(君、公)姓に、国造・県主はアタイ(直)姓に改められた。臣連制の中で最も有力な者には更に大臣(おおおみ)、大連(おおむらじ)の姓が与えられた。その他のカバネとしては、百済滅亡後に帰化した百済王族に与えられた王(こにきし)などがある。
출처 : 김귀선님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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