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얼’을 찾는데 굳이 남의 견해가 필요한가?
배달문화원은 2005년 역사포털을 자인하는 민족사관 홈페이지 알자고닷컴(www.aljsgo.com)를 운영하면서 시작되었다. 대표인 임보환 원장(사진)이 스스로 상고역사에 관심을 갖게되면서 부터 '타인에게도 알려야되겠다'를 결심한 결과다.
그는 자신과 역사화가歷史畵家인 아내가 운영하는 광고편집사 한쪽 방에 배달문화원이라고 간판을 달고 홈페이지를 오픈하였다. 그 당시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고조선이 사라지거나 대폭 축소되버린 후 역사 교육이 이살한 기류를 타기 시작한 즈음이다.
역사의 사실이건 아니건 국민의 정서를 무시하고 일부 권력자들에 의한 정치적 산물이다 보니 반발이 매우 심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힘의 논리로 무장한 일부의 지식계층마저 이를 거들었고 강단사학계의 의도 또한 고조선의 등장이 껄끄럽기는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안정적 동북아 질서'였고 (패전국)일본을 놔두고 (승전국)조선을 양분하는 이상한 논리가 가려지길 원했던 미국의 의도를 우선 반영한 결과였던것 같습니다. 라고 덧붙였다. 임원장이 이야기하는 배달倍達문화 이야기 한번 들어보자.
옛 조선 . 배달국은 실존한 국가
우리 한민족을 배달민족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많이 들어보기는 했지만 자세히 모르는것 같고 옛조선은 다들 인지하시리라 믿는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아예 '배달'이 음식배달하는 스마트폰 앱 정도로 알고 있어 배달문화원 임원장을 시쳇말로 '웃프게' 만든다. (슬프지만 웃기는)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었인가 그것이 배달문화원이 설립된 이유이고 사명으로 임원장은 생각한다.
이씨왕조가 조선이면 그 옛날 조선은 무었이고 배달민족은 또 무엇인가. 일본의 개가 되어 우리 역사를 욕보인 이병도의 제자들에게 한국사를 배운 불쌍한 배달의 후손들이 바로 우리다.
우선, 조선은 국가명이 아니다. 국가적 기틀이 없던 원시문명(구석기 ~ 청동기 시대) 시대이다 보니 정해진 원칙이 없다. 국경이 없으니 국가명이 존재 할 리가 없고 국가의 체계가 없으니 정치적 집단을 따로 꾸려야 할 이유가 없던 그 시절에 돋보이는 행위나 존재의 이름은 있었을 것이다. 즉 '의도적인 것'은 없으되 '자연적인 것'은 있었다. 이 정도는 다들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아사달阿斯達' 그들의 이름이다. 그것도 의도적으로 정한 무리나 국가적 집단체의 명칭인 지칭 대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다.
세종 때 정리된 '훈몽자회'에 아阿:모퉁이, 굽이진 곳, 물굽이, 큰 구릉 등으로 정리되어 있다. 학자들이 주장하는 밝달=배달 의 연장 선상이다. 즉 '밝은 터', '환한 땅' 범주 내에 있다. 그러므로 같은 뜻을 갖는다. 이것은 원시적 사고체계에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가 아닌가? 아사달, 배달, 조선등은 후대 사람들이 그 시기를 지칭하기 위해 옛 표현 방식을 빌어(예를 들어 이두吏讀) 그 시대의 문자로 적어 놓은 것이다. 언덕이나 높은 곳의 한 모퉁이(밝은곳. 적으로 부터 방어가 쉽도록 물굽이를 끼고)를 뜻하는 아阿. 그 다음 어조사 사斯(~한). 터나 땅을 뜻하는 달達(양달, 응달하는). 같은 방법으로 배倍(곱으로, 몇 배로)달達(땅). 즉 아주 밝은 땅을 이두식 한자로 적음. 또 아침조朝 고울선鮮 밝은 땅을 한자로 부드럽게 표현한 것일뿐이다. 억지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임원장은 우리 민족이 '단일'민족 이라는것도 강하게 부정하고 싶다.
이미 고구려, 백제, 신라, 가락시대부터 근세까지 사서에 기록된 외세의 침략은 약1,000회 그걸 모두 방어하고 때로는 지배당하는 동안 수 많은 이민족의 피가 섞여왔다. 옛조선, 배달시대를 제외하고 고구려,백제,신라 때 부터 계산해서 그렇다. 약 2천몇 백년 정도. 순혈, 단일민족은 절대 훌륭하다 볼수가 없다. 인류학적으로 단일민족은 단점이 더 많다고 한다. 중세 유럽에서는 혈통을 지키겠다고 성행하여 집안끼리 결혼, 근친상간 등의 폐해가 적잖이 알려지고 있다. 질병의 유전뿐만이 아니라 돌연변이 열성유전자 등의 양산등 문제점이 이루 말 할 수가 없을 정도다. 우리 민족은 이미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훌륭한 후손을 남기고자 부던히도 노력하였다는 근거가 있다. 미개한 인간 종족 중에서 호전적인 두 그룹(곰부족, 호랑이부족)으로 부터 한 무리가 되어달라는 청을 받아들여 상대적 가능성이 있는 곰족을 선택한다. 그래서 환웅과 결혼한 곰부족 여장부는 단군 왕검을 낳고 그가 자라서 옛조선을 세운다. 여기까지는 다들 아는 이야기 아닌가. 그런데 약간 각색 한 듯한 이 얘기가 사실 좀 엉터리다. 이병도를 비롯한 그 제자들, 싸잡아 '식민사학자'들이 각색한 냄새가 난다.
‘개천절’ 하루 쉬는 날인가?
단군이 조선 즉 '국가를 선포 한 날'은 아니다. 환웅이 하늘을 열고 (개천開天) 땅에 내려온 날이다.
즉 우리가 아는 역사 지식과는 많이 다르다. 사서 환단고기, 규원사화 등의 기록에 의한 정리를 다시 해 보면, 첫 임금은 거발한 환웅이다. 그로부터 18대 거불단 환웅까지 엄연한 치적과 왕조의 상황이 자세히 전해지고 있으나 이를 인정하는 국내 사학자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 국민이 수백년 혹은 수천년 동안 주변국의 침략과 노략질에서 벗어난지 얼마나 되었는가? 꼭 나라 팔아 먹은자의 역사 인식을 답습 할 필요는 없다.
국민 전체의 정서를 국혼國魂 혹은 '겨레얼'이라 한다. 근본도 없고 중국의 속국이거나 일본의 지배를 받은 보잘것 없는 소빈국. 우리나라 대한민국. 자랑스러운가?. 자부심이 있는가?
임원장의 말이 틀렸다해도 위대한 조상을 잊지는 말자. 자부심을 갖자. 단재 신채호선생은 '독사신론'에 이르기를 외국의 노예로 살기를 자처하는가? 라고 호소했다.
단군은 국가적 기틀을 갖추고 배달나라를 이어 오가(제후국의 군장)와 함께 나라를 다스린 47대 왕조(약2,400년간)를 말하는 것이다.
단군은 왕이나 대통령을 말하는 것이지 이름이 아니다. 물론 이름은 따로 있다. 배달나라 18분, 조선 47분이 따로 정리되어 있다.
식민사학자 이병도는 단군 한사람이 2,000년 이상 나라를 다스렸다는 논리로 신화로 왜곡하고 환국 桓國을 환인桓因으로 날조하도록 도왔다.
왜 역사 가지고 난리들인가.
이병도는 죽기전 자신이 저지른 반민족적 작태에 대해 일부 인정한 바 있다.
작고한 최태영 박사의 설득에 마지못한 점도있고 조금이나마 속죄하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배달문화원 원장이라서 대한민국의 국민의 일원이라서 민족사학계의 편을 들거나 식민사학자들을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느 영화의 대사중에 '뭐가 중헌디...대체 뭐가 중허냐고....?' 그 대사 만큼 지금의 한국사학계에 딱 들어맞는 말은 없을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갈라놓는가? 이데올로기? 종교? 돈? 우리 민족은 배달민족이다.
2002한일월드컵 때 우리의 저력은 이미 확인되고도 남았다. IMF구제금융을 받았던 그 험한 시기 우리 배달민족은 또 한번 신화를 썼다. 우리는 뭉치면 전세계 어느 나라도 여느 민족도 할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일을 거뜬하게 이루어내곤 한다.
그런 우리가 가진 자산이라면? 돈인가 끈기인가.
우리 민족의 무엇이 인류 모두에게 해당되는 모두 함께 잘 살게 하는 실질적인 원리가 되는가?
그것은 단군 왕검의 국가 이념인 '홍익인간' 철학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저력이자 본능인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그토록 단군을 아무것도 아닌 보잘것 없는 존재로 만들고자 말 잘 듣는 이병도를 시켜 역사 축소, 조작에 심혈을 기울인것이 아닌가.
그 장단에 아직도 놀아나는 식민사학자들은 이병도의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이다.
다투지 말고 문화로 가자.
그래서 배달문화원은 '문화'로 이야기 하고자 한다. 10년을 활동하며 노력한 효과가 요즘 좀 있다. 작년(2015) 배달문화원 개원10주년기념 용두산공원 역사화 전시회에 많은 분들이 관람해주었고, 이어진 올 6월 국회헌정기념관의 '한문화컨퍼런스'에도 적잖은 호응이 있었다. 역시 문화로 접근하길 잘했다.
그런 안도감도 잠시. 아내이자 국내 유일 역사화가 성미경의 독촉에 또 일을 벌렸다. 부산시민회관에서 9월24일 시작하는 '제1회 마고얼스 포럼'. 말하자면 역사의 '문화적 접근'이랄까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참이다.
부산은 우리나라에서도 정서가 독특한 항구도시다. 제2의 수도, 광역시, 해양특별시 등의 수식어 뒤에 또 하나 덧붙이고픈 임원장만의 부산캐치프레이즈 '시작의 도시' 참 잘 어울린다.
무엇인가 시작해 보는데 시민의 정서가 한 몫한다. 창의적인 인성, 열정적이기 이전에 '놀 줄 아는 시민’ 잘 노는 정서야말로 새로운 시작의 활력소다. 야구장에서 '즈그들끼리' 잘 논다. 우리팀이 이기고 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로 '다 같이 어울리는 법'이 이미 몸에 밴 사람들이 부산시민들이다.
그래서 제2의 고장이지만 부산이 좋다. 그래서 돈 안되는 일을 하는 임원장도 뭔가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데 남이가.. 홍익인간 아이가... ’
[ 배달문화원 www.baedal.org ]